미쿡 출장은 12시까지 야근도 불사합니다 하핫 :)
 by 나무피리

*글과 사진을 가져가시기 전에 >소소한 알림<을 먼저 읽어주세요.
무단불펌은 그 어떤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몸으로 마음을 숨기다, [색, 계]
다른 극장에서 거의 다 내려갔다기에 DVD 발매를 기다리고 있었던 영화 [색, 계]를 우연찮게 발견한 영화관에서 볼 수 있었다. 연인군의 집에서 매우 가까운 이 극장은 아담하지만 상영작을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갈아치우지 않는 고마운 곳이다. 추억이 가득 쌓여가겠구나 싶은 상영관에 자리를 잡고 나니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두 시간 반이 넘는 상영시간 내내 나는 가슴 한 구석이 뻐근했다. 선배가 좋아 그저 들어갔던 연극부, 그 연극부가 도모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적확하게 알지 못한 채로 함께 하겠다며 내미는 손, 막 부인의 역할을 잘 해내기 위해 남자와 자는 법까지 실습(!)을 통해 배우라는 연극부 동료들, 자는 도중 '이제 좀 늘었는데'라며 절박하게 몸을 움직이는 치아즈(탕웨이 분)를 보며 말하는 선배라는 사람, 일본의 편에 서서 중국의 독립운동을 탄압하는 이(양조위 분)에게 접근하기 위해 필사적이면서도 치명적인 유혹을 감행하는 모습, 그런 치아즈(막 부인의 모습인)에게 흔들리는 이, 철저한 계산 하에 이루어졌지만 그 순간만큼은 본능적으로 하나가 되는 처절한 베드신, 치아즈의 노래를 들으며 흘리는 이의 눈물, 되돌아온 핑크 다이아몬드 반지까지. 그 모든 것들을 보면서 이해도 되고 화도 나고 마음도 아팠다.

많이 화제가 되기도 했고 마케팅도 그쪽으로 부각했지만 사실 내게 세 번의 베드신은 점점 마음아픔의 강도를 더해주는 장면이었다. 물론, 매우 야했다. 흔히 한다는 '가림'이 그들에게는 전혀 없었던 데다 몸에서 일어나는 대다수의 변화를 관객 모두가 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의 베드신에는 몸 말고도 그들의 마음 변화를 고스란히 드러내주는 눈빛이 있었다. 첫 번째 베드신에서 이는 막 부인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 두 번째에서는 이의 얼굴을 보려는 막 부인의 얼굴을 자꾸만 옆으로 돌린다. 마지막에 가서야 그들은 서로의 눈빛을 바라보며 절정에 이른다. 영화 속에서 치아즈가 말했던 것처럼 정말 모든 것을 던져 절정에 이르러야지만 이가 치아즈를 믿는다는 말은 그래서 더 내게 슬프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이 역시 막 부인에게 끌리고, 정복해버리고 싶은 마음을 가지면서도 그녀의 정체를 알아갈수록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막 부인이 가면을 벗는 순간은 자신과 자는 동안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자신과 자면서까지 숨기는 게 있을 거라는 생각에 더 그녀를 강압적으로 대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양조위 아저씨는 [화양연화]에서도, 레슬리와 같이 찍은 [해피투게더], 수트가 무지 잘 어울렸던 [무간도] 등등 수많은 영화에서 멋진 모습이었기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 탕웨이라는 배우는 이 영화에서 처음 봤는데 와아, 정말 어쩜 이런 배우가 이제서야 영화에 등장하게 된 걸까 싶을만큼 근사했다. 여배우라면 몸사리기 쉬운 베드신도, 영어대사도 중국어(두 가지 중국어가 나오는 것 같았다)도 거침없이 소화해내는 모습이 무지 멋있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음악. 잔잔하지만 밝지 않은 느낌의 선율이 이들의 연기와 잘 어우러졌다. 두 번 보기는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좋았던 영화, 누군가에게 신뢰를 심어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해준 영화 [색, 계].

+독일어판 포스터.

+팔걸이를 젖힐 수 없었지만, 대신 손 꼭 잡고서 보았다. 헤헷.


by 나무피리 | 2008/02/10 02:18 | kino | 트랙백 | 덧글(4)
트랙백 주소 : http://namupiri.egloos.com/tb/3612481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at 2008/02/10 04:2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그라드 at 2008/02/10 09:45
아직까지 하는 곳이 있다니 놀라운걸.
뤼미에르라면 나도 예전에 늦게서야 '레이'를 보러 갔던 기억이 있는데 같은 곳인지 모르겠다 ^^;
아무튼 감상평 읽다보니 예전의 그 잔잔하고 아련한 기억이 살아나네. 느낀게 참 비슷해서 감독이 원하는 걸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어.
Commented by 나무피리 at 2008/02/10 19:36
비공개04:28//정말 그랬어요. 나도 마음이 답답해지는게 슬프기도 하고 화도 나고 그렇더라고요. 말해준 대로 진짜 그랬답니다. 움직임이 정말 어찌나 처연하던지, 싶었어요. 그 순간까지도 이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을 허락치 않는 둘의 모습이 슬프더라고요. 배우들, 정말로 대단했어요^^
Commented by 나무피리 at 2008/02/10 19:37
그라드//그러게. 나도 사실 극장에서 볼 거라 생각도 못했는데 아직 상영하더라. 아마 그 극장 맞을 거야. ^^ 좋은 영화였는데 참 슬펐어. 하지만 극장에서 보아서 참 다행이다 싶었구^^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이글루 파인더
최근 등록된 덧글
최근 등록된 트랙백
불면증
by Fluxus
월·E / Andrew Stanton
by LUNARIA
그러니까, 그러니까..... 부..
by ▶글 쓰는 곰 이야기 - 어디선가 ..
skin by 이글루스
customized by 나무피리